내 결혼 무렵 고등학생이던 둘째처남이
어느새 며느리 보는 날이란다.
세월 빠르다고 입버릇처첨 칭얼대긴 했지만
말과는 달리 세월에 대한 감각은 무디었더니
남의 세월을 바라보면서 내 세월의 빠름을 새삼 본다.
벚꽃 화사한 봄날에
일찌감치 결혼식장에 도착해서
주차장 주변 잔디밭을 어슬렁거리다가
햇살 아래 졸고 있는
땅딸막한 민들레에 카메라 초점을 맞춘다.
"뭐 찍는교?"
"그냥... 이것저것..."
그냥 이것저것...
이름 몰라도 그 이름 굳이 알려하지 않고
들어도 금방 잊어버리는 그런 것...
노심초사 마음 쓰지 않아도
저 혼자 힘으로 잘 버텨 주는 그런 것...
한 포기에 집 한 채 값인 그런 것 말고
성큼성큼 솎아내도 아깝지 않고
소맷자락에 휘둘리고 발끝에 밟혀도
조금 덜 미안하고 돌아서면 금방 잊기도 하는 그런 것들...
창원에 가면
닭장 옆 노랑제비꽃 안부를 먼저 묻고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들여다보고
톱밥 묻은 작업복 털며 둘러보는 것 역시 그의 안부다.
이 또한 며칠 못가는 소소함이지만
시드는 그날부터 나는 또 일년을 기다린다.
언제부터인가
삭막한 시멘트바닥의 민들레를
쪼그리고 앉아 들여다 보기도하고
산길 걸을 때면 자주 발밑을 챙기고
화장실의 좁쌀만한 거미가 애처로워지고
육교를 지날 때면 주머니의 동전을 확인하는
기특한 작은 마음이 가상키는 하지만
원래 그랬던 것이 아니라
그것이 필요하다는 걸 겨우 알게 됐고
그렇게 하자고 스스로를 자꾸 꼬드겨 왔으며
아직도 달래고 있지만
지금 이순간에도 근심, 걱정, 탐욕들은 여전하다.
이틀 만에 돌아오니
작은 화분에 붓꽃이 노랗게 피었다.
재작년엔가 얻어온 녀석인데
지난해엔 꽃을 거르더니 금년에 용케 피었다.
대단치도 않은 일에 무슨 호들갑이냐 하겠지만
이 작은 몸짓 하나가 주는 기쁨은 작지 않다.
이 역시 며칠 지나면 부스스 시들겠지만
그 기쁨을 기억하며 또다시 일년을 기다릴 테니
결코 작지만은 않은 소소함이 아니겠는가.
해야할 일들이 있으니 고민도 많았고
책임져야할 가족이 있으니 욕심도 많았고
참 많은 걸 잊고 살았고
참 많은 걸 버리고 살았다.
필요에 따라 잊기도 하고 버리기도 했지만
원했던 것 다 갖지도 못했고
품었던 것조차 다 간수하지 못한 지금에야
잊었던 그 자잘한 것들을 기억하고
버렸던 그 소박한 것들을 보듬어 보는 것은
그들을 위함이 아니라 순전히 나를 위함이다.
가야할 길이 멀수록 쉬기를 잊지 않고
움켜쥐기 위해서는 손바닥을 펴야하듯이
귀한 것 탐하는 마음 한 구석에
자잘한 그들의 자리도 만들어 주고 싶다.
하루 한두 차례의 아주 짧은 시간이고
좁쌀보다 더 작은 마음자리지만
그마저도
그들을 위함이기보다는 나를 위함이 아니겠는가.
작고, 삭고, 벌레구멍 숭숭하지만
그 어떤 접시보다 좋아하는 접시다.
찻잔자국이 결코 흉스럽지 않음은
꾸밈없는 이 녀석만의 특별함이 아니겠는가.
그런 얼굴이고 싶은데 이 마저 욕심이려나?
아른아른한 이웃들의 안부를 마음으로 묻는다.
-11.04.10 강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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