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온 후 처음으로 대청소를 했다.
베란다엔 낡고 오래된, 쓰지도 않을 물건으로 가득하고
흰 벽은 회색으로 그을렸고
벽지는 노랗게 바랬고
장판은 난장판이 됐고...
먼지 가득한 그 구석에서
오래된 추억이 되살아난다.
장농 뒤쪽에서 아들의 어릴 적 미소를 찾았고
방치됐던 범선이 밖으로 나왔고
잘 모셔 두기만 했지 잊고 살았던
아버지의 젊은 모습과 어머니의 주름진 얼굴이
무심한 자식을 나무라시는지
사각 틀 안에서 표정이 없으시다.
복잡한 게 자꾸 싫어지는 건
아내도 마찬가진가 보다.
빛바랜 문갑과
낡아버린 소파와
버리지 못해 끼고 있던 헌 냉장고와 함께
장식장도 두어 개 버리고
벽에 걸어놓은 액자와
구석방에 있던 옷걸이도 내리고
아내의 공간인 안방물건도 거의 버리고
심지어 화장대도 버렸다.
넓고 단순해서 좋다 그랬는데
인간의 오랜 습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겠는가?
사흘쯤 되니 아쉬운 게 하나 둘 생긴다.
옷걸이도 아쉽고
화장대도 아쉽고
수납장도 아쉽고
또 또 또....
"애들캉 찍은 가족사진은 걸어야 겠네.."
"당신 그림도 하나 걸지요?"
"소파 한 개 맹글어 주이소.."
"식탁 옆에 쪼매한 수납장 하나 있으면 좋겠네..."
피식 웃으며 화장대 없어서 우야노? 했더니
"그거야 뭐..." 우물쭈물한다.
말 속에 아쉬움이 가득하다.
사람 사는 게
버리는 것으로 끝낼 수 있으면 좋겠지만
빈자리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까지 버리진 못했으니
버려도 버렸단 말 할 수 없음을 알았다.
하도 허전해서
지난번 만들다 남은 새 한 마리를 티비 위에 얹었다.
이렇게 또
빈자리는 새롭게 채워지는 것을...
"어떠노?"
물었더니 대답 대신 씩 웃는다.
아침 햇살이 빈 벽에 외톨이의 짝을 그려 놓았다.
혼자 보다는 훨신 보기 좋으니
조만간 한 마리 더 만들어 짝지어줘야겠다...^^
-12.05.26 강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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