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작은이야기

4월...그리고 제비꽃

강 바람 2012. 4. 11. 19:51

April come She will - Simon & Garfunkel

제비꽃을 봤다.

아니 만났다.

산에 들에 지천으로 널리는 녀석인데도

봄이면 버릇처럼 찾아 헤매는 꽃이기도 하다.

수십 종의 제비꽃 중에 내가 만나본 녀석은 겨우 너댓 종에 불과하다.

제비꽃

남산제비꽃

흰젓제비꽃

노랑제비꽃

콩제비꽃...이마저도 확실한 건 아니지만...

꺾일 듯 흔들리는 이 녀석을 찍으려고

바람 자기를 기다리며 풀밭에 엎드려 있다가

"얘야, 흔들린다고 부끄러워 마라

살아 있기에 흔들리기도 한단다."라고 했는데

그것은

시도 때도 없이 흔들리고 그 흔들림 감추려고

애써 태연한 척하는 나에게 한 말이었더니

도종환 시인의 시 '흔들리며 피는 꽃'에도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라는 표현이 있단다.

허긴, 사람의 감정이 제각각이기도 하지만

더러는 같은 생각 같은 느낌일 수도 있으니...

 

 

사월 어느 날 아침

무심히 내다본 베란다에 노란붓꽃이 피었다.

3월 부터 기다려온 녀석이 무지무지 반가웠는데

한 이틀 눈길 주지 못한 사이에

녀석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혹시 밤이라서 자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

오늘 아침 눈뜨자마자 내다봤지만

녀석은 그렇게 가고 없다. 무심하게도..

 

긴 겨울 동안

삭막한 베란다를 채워주었던 동백은

하나 둘 지더니 이제 두 송이 남기고 모두 떠났다.

어느 분이 그러셨지...꼭 생살 떨어진 것 같다고...

 

 

일찍 피어 일찍 가니 뭐 그리 아쉬우랴만

입술에 말라붙은 꿀 한 방울이 미련인 듯 거시기하다.

 

지난번 강풍불기 전날

하얀 목련이 봉오리를 피우기 시작하기에

낼쯤엔 흰 꽃을 볼 수 있으려니 했었는데

다음날 아침에 내려다보니

느닷없는 바람에 얼마나 시달렸던지 성한 꽃잎이 없었다.

서둘러 나왔다가

호된 비바람에 널브러진 그 모습이 보기 싫어

상처투성이의 사진은 굳이 올리지 않았다.

한 이틀만 늦게 피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오늘 투표하러 나갔더니

노인정 건물 앞에 자목련이 활짝 피었다.

눈이 즐겁다.

며칠 늦게 핀 덕에

비교적 깨끗한 자태를 뽐내고 있으니

조금 게으르게 사는 것도 때론 덕 될 때가 있지 싶고...

 

나선 김에 동네 한 바퀴 돌았다.

길가에도 자동차 지붕에도 하얀 꽃비가 내렸다.

흥건하게 젖은 꽃잎들이 거시기 하지만

그나마 빗줄기가 가늘어져 다행이다.

며칠은 더 볼 수 있으려니....

 

 

묵힌 텃밭에 냉이가 가득하다.

냉이 꽃대가 한 뼘이나 삐져나와

하얀 꽃을 조롱조롱 매달고 있다.

앞에도 뒤에도

밟고 선 발 그 밑에도 온통 하얗다.

내 고향에선 난생이라고 불렀고

신물 나도록 먹었던 쌉쌸한 난생이국엔

쓰디쓴 흉년의 기억이 어른거린다.

참 고마웠던 난생이...

어쩌면 그 궁핍을 도우려 일찍 나왔을지도 모를 일...

 

후줄근한 날이지만

선거를 핑계로 동네 한 바퀴 돌아 왔다.

어떤 시인은

'제비꽃 알아도 봄은 오고

제비꽃 몰라도 봄은 간다'고 노래 했지만

내게 제비꽃은 봄의 시작이다.

그리고 더 이상 찾을 제비꽃 없으면

나의 봄타령도 끝날 것이다.

화분에 노랑제비꽃 싹이 올라온다.

그 녀석 때문에 또 며칠은 심심치 않을 것이다.

-12.04.11 강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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