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작은이야기

오월 유감

강 바람 2016. 5. 2. 12:10

이것저것 섞어서

5...

어린이 날

어버이 날

부부의 날

그리고 또 무슨 날 무슨 날...

이렇듯 행사가 많은 달이어서인지

몽땅 뭉뚱그려서 가정의 달이라고 하는데

금년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중간에 낀 금요일을

임시공휴일로 정해서 4일 연휴를 만들었답니다.

정부에선 소비촉진으로 경제를 활성화하느니 어쩌니 하고

일각에서는 휴일수당이니 휴일요금이니 하며

근로자입장과 경영자입장과 소비자입장이 엇갈리기도 하고

정작 돈 쓸 사람들은 옳다구나 해외로 빠지고

없는 사람은 쓸 돈도 없는데다 일할 시간마저 줄이니

수입만 더 줄게 됐다고 볼멘소리를 토하고 있습니다.

 

각자의 이익에 따른 이런저런 갈등이 뉴스를 점하고

해결책은 없고 각자의 입장에서 각자의 목소리만 드높이니

이럴 때 슈퍼맨 같은 영웅이 쨘 나타날 수는 없을까...

재갈량의 꾀주머니 같은 묘책은 없을까...

오지랖 넓게 답도 없을 공상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다 같을 수 없음을 알고

이런 갈등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님도 알고

그런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님도 알면서

하루 늘어난 휴일,

나와 별 상관없을 그 휴일이 왜 이리 짠한지 모르겠습니다.

이게 원래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음에도 그게 또 그렇게 흐르고

그 흐름 속에 나도 덩달아 흐르고 있네요.

 

또 있습니다.

어버이날...

다만 공경의 대상으로 각인된 단어 어.....

지금 당장 검색 창에 "어버이"를 쳐보이소.

-어버이연합

-어버이연합 실체

-어버이연합 청와대

-어버이연합 전경련

-어버이연합 일당...

내가 알고 있던 어버이관련어가 아닌

최근에 생성된 관련표제어들이 가득 드러납니다.

이 또한 원래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을 겁니다.

빨간 색종이 어설프게 접어서

어머니 고름에 달아 주던 그때의 어머니날.

나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보잘 것 없는 종이꽃과

쭈뼛쭈뼛 몸 꼬며 부른 뻘쭘한 노래와

흐뭇하게 웃으며 박수 쳐 주시던 어머니...

 

여기서 새삼

엄격함과 무한희생이 공존하는

어버이의 그 높은 위상을 들먹이겠습니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내게 어버이는 양보하고 부축하고 공경해야할 대상일 뿐이었는데

오래지 않은 그 어느 날부터

어버이뒤에 연합이라는 단어가 붙으면서

야금야금 부정적 단어로 변질되어 세간을 떠돌기 시작했지요.

세상을 속이려고 했고

처음엔 속기도 했는데

오래지 않아 냄새가 나기 시작했고 그렇게 썩어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다 아는데 오직 그들만 모르고 있었는지

알아도 모른 체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새삼스러운 게 아니었고 터질 게 터진 겁니다.

 

여기서 잠깐

위에 예시한 검색어 중의 마지막을 보입시다.

어버이 연합 일당...”

여기에서의 일당은 한패거리라는 뜻의 一堂이 아니고

하루 일한 대가를 이르는 日當일 겁니다.

짠하지 않은교?

구청에서 제공하는 어르신일자리의 일당도 아니고

노동력을 제공하고 받는 일당도 아닌

관제시위에 나서서 받은 일당이랍니다.

정책반대집회를 반대하는 시위에 나가서

교통비니 식비니 하는 명목으로 지급됐다는 일당.

동원된 어버이들이  

과연 일당을 제대로 받기나 했는지 또 짠하지 않은가요?

앞에 서서 큰소리로 외치는 몇몇을 제외하면

군중 속에서 모자로 덮고 마스크로 가리고

땅만 내려다보는 야윈 얼굴과 초점 잃은 눈동자들...

이 시대, 이 거리의 소외된 그들이

양어깨에 가족과 나라를 짊어졌던 어버이들이 아니던가요.

그랬던 그들은 막걸리 한잔과 버스 교통비 한 푼에 이끌려

쉰 목소리로 자신의 생각과 다른 구호를 외치고

쓴 막걸리 한 잔으로 쉰 목을 축였을 테지요.

누군가 볼세라,

어디엔가에 비춰질세라 두리번거리며

텁텁한 막걸리에

왠지 모를 부끄러움까지 섞어

꿀떡꿀떡 삼켰을지도 모르지요.

이 또한 짠하지 않습니까?

 

안타깝고 측은하고 짠한 오늘의 어.....

성토하고픈 말도 있고  

위로의 말도 있지만

이 글 읽으시는 님들 모두 다 아는 사실이니

괜한 중언부언으로 심사 어지럽힐 일 있으랴 싶어 고마 접습니다.

다만,

"어버이"라는 단어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재고해 주십사 바랄 뿐입니다.

오월...

시작부터 짠해지는 가정의 달입니다.

혹시라도

화사한 카네이션 뒤에 가려졌을지 모를 

내 어버이의 참 안부를 살펴볼 일입니다

 

-16.05.02 강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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