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게는 사십여 년이고
적게는 엊그제 들인 녀석까지
크고 작은 화분들이 서른 댓 개에 이르지만
하나같이 특별할 것도 없는 자질구레한 것들이라
다음 이사 때엔 홀가분하게 털고 가리라 했더니
한 번도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따로 한 차 실어야할 번거로움에도
여직 끌고 다녔으니 연緣일지 정情일지...
그 중에서도
거실 출입문 입구에 기거하는 난蘭이 다섯 있는데
정석대로라면 햇볕도 쬐고 바람도 맞춰야겠지만
오래 함께하다보니
가끔은 있는지조차 잊고 살기 일쑤라
누렇게 뜬 잎이 마르다 못해
바스락 소리가 들리듯 해서 아내한테 한 소리 들었다.
메마른 마사만 봐도 안절부절못하는 아내와 달리
'난은 게으른 사람이 키우기 좋고
동백은 부지런한 사람이 잘 키운다할 정도로
물이 많으면 오히려 좋지 않으므로
습도가 많은 여름은 물을 줄이고
건조한 겨울에 물을 늘이라'는 선배의 가르침을
금과옥조로 여기다보니 아내랑 자주 실랑이를 한다.
어제도 그랬다.
누렇게 뜬 잎을 가리키며
"물 좀 주소...
물을 얼마나 안 줬으면 잎이 저렇게 됐겠는교?"
'그렇게 걱정되면 당신이 좀 주지'라고 대거리하고 싶지만
물주기 위해 베란다에 옮겨야 하고
마사 가득한 화분이 결코 가볍지 않은 이유로
명색이 남자인 내가 하던 일인지라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하고 얼결에 나온 말이
"이 사람아! 묵은 잎이 가야 새잎도 나지
오래된 잎이 버티고 있으면 새잎이 우에 나오노?
가끔 이래 말려야 갈 놈은 가고 나올 놈은 나오고 그런 거지
물만 많이 준다고 천년만년 사는 것도 아닌데..." 투덜투덜...
망구 내 생각일 뿐이지만
해놓고 보니
이게
난초에게 한 말인지
아내에게 한 항변인지 아리송한데
아~ 덴당...디랄 같은 이 기분이라니...
데기럴...아직은 까마득한 남의 일인듯 했더니
내 속의 나는 어느새 그런 생각을 했었나보다.
그래
아닌 척해도 천년만년 살 줄 알았겠지.
아니면
티비에서 하두 고령사회 어쩌구 하니 그 탓인지도 모르겠다.
슬그머니 베란다에 나앉아 하다 만 작업을 이어갔다.
손은 똥가리를 잡고 있지만 마음은 저 혼자 따로 놀고 있으니
어둠 내려 불 밝힐 때까지 마무리 못하고 밀쳐두고 말았다.
나머지는 또 언제 할지 모르겠고
아내한테 잔소리 듣기 전에
어제 내 놓은 화분이나 제자리로 옮겨야겠다.
이거... 아무래도 가을징조인 듯...^^
-2015.09.08 강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