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작은이야기

2016 가을

강 바람 2016. 11. 16. 19:49

Gabriel‘s Oboe  

베란다에 단풍 든 나무가 하나 있다.
모감주나무라고 들은 것 같은데 역시 이름은 가물가물하다.
소사나무도 노랗게 물들면 나름 볼만한데
아직 단풍이라고 말할 정도는 아니고
한그루 있던 단풍나무도
재작년인가 온다간다 말도 없이 훌쩍 가버렸다.
늘 느끼는 거지만 가을은 참 이상한 계절이다.
울긋불긋한 단풍이 가을인가.
들녘을 물들인 황금 벼이삭이 가을인가.
주렁주렁 매달린 감이 가을인가.
가슴을 훑고가는 바람이 가을인가.

 

집을 나섰다.
가지 끝에 매달린 낙엽이 위태롭지만
일 끝내고 기꺼이 돌아가는 모습이 아름답다.

 

지난 봄 파릇파릇한 희망으로 돋아 
할일 다한 뒤 훌훌 털고 가는 가을.
더러 아쉽고 더러 후회도 있지만
거스르지 않고 순리에 따랐으니
조금 모자란들 어떠리.
조금 쳐진들 어떠리.
따뜻한 색과 길게 누운 그림자가 편하다.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깔고 앉아
휘 둘러보다 멈춘 시선 끝에 한 쌍의 고목이 의연하다.
부산 신항만 건설로
삶터에서 쫓겨난 오백년 된 팽나무인데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수고로 해운대까지 옮겨와
새 자리에 뿌리내린지 육년이란다.
이 할배나무 옆에 할매나무도 함께 있는데
억소리 나는 비용과 수고를 마다치 않고
여기 이 자리에 옮겨진 이 나무의 의미에  
어느 스님께서 남기고 가신 낡은 의자가 겹친다.

육중한 빌딩보다 키는 작지만
결코 그 높이에 주눅 들지 않음은 살아있음이려니.   
우리에게도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그런 의자 하나
더운날 그늘이 돼주는 그런 나무 하나
힘들 때 마음으로 의지할 수 있는 그런 리더 하나 쯤 있었으면...

 

돌아오는 길

강심에 꽂힌 오후 햇살이 느린 걸음으로 따라온다.

 

-2016.11.160강바람-

'바람소리 > 작은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음의 길  (0) 2017.01.25
자정을 기다리며  (0) 2017.01.21
  (0) 2016.10.04
감자전  (0) 2016.08.18
오월 유감  (0) 2016.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