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고 자란 고향을 떠나
낯선 곳에 터 잡은 지 40년이 넘었으니
산 시간만 따지면 고향 못잖음에도
타향은 여전히 타향이고
그래서 더 생각나는 게 고향입니다.
그 길은 기껏 320킬로미터
쉬엄쉬엄 가도 반나절이면 가는 거리지만
40년 전 그 길은
경부선열차 타고 영주까지 가서
다시 영동선으로 갈아타고
구불구불한 도계, 황지를 돌고 돌아
11시간 만에 도착하는 먼 길이었습니다.
부산 강릉간의 버스운행이 잦아지면서
겨울산중의 하얀 철길과
계란과 사이다를 유난히 좋아하던 내 아이들과
덜컹거리는 바퀴소리와
역마다 서던 그 지루함까지 추억이 되었습니다.
해안을 따라가던 풍광 좋은 7번국도도
네댓 시간이면 갈 수 있는
빠르지만 재미없는 길로 변했습니다.
가끔은 예전의 감성으로 옛길을 찾지만
빠른 길에 길들여지다 보니 마음뿐이기도 합니다.
그 길이 눈에 갇혔다는 뉴스를 보면서
눈에 막힌 그 풍경조차 그립다 했더니
그리워만 말고 가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데
맞는 말이긴 한데 그게 이상한 것이
명절이나 부모님 기일이면 떠오르다가
차례나 제사를 지내고 나면 슬그머니 잊히니
정작 그리운 건 고향이기보다
그분들에 대한 그리움인지 모르겠습니다.
다시 눈을 감습니다.
굵은 대나무를 쪼개서 불로 휘고
엉금엉금 기어 뒷산 꼭대기에 올라
넘어지고 자빠지며 눈썰매 지치던 개구쟁이를 보고
토끼몰이에 지쳐 큰대자로 누운 아이를 보며
금년 설 뒤엔 7번국도나 함 탔으면 싶지만
어느새 눈길이 겁나는 부산사람이 되었으니
예전처럼 영동선 열차를 타던지
시외버스에 기대어 느긋하게 다녀올까 싶은데
글쎄요...이번에도 그냥 주저앉기 십상이고
어쩌면 가느니 마느니 그런 궁리만으로도
가고 싶고 보고 싶은 것 다 소환했으니
그것으로 족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시때때로 넘나드는 그 길은
눈감아야 보이는 마음의 길입니다.
설을 맞아 오가시는 길 부디 조심하시고
더욱 더 행복한 명절 되시기 바랍니다...^^
-2017.01.24 강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