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작은이야기

새해풍경

강 바람 2019. 1. 2. 10:29

이것저것 섞어서

작년(?)에 올린 글이
여전히 [이야기방] 첫머리에 앉아 있으니
오가며 힐끗힐끗 보는 게 영 편치 않아서
일단 컴 앞에 앉긴 했는데
“건강하게 잘 먹고 잘 살자”는 이야기는 여기저기 했으니
같은 말을 새삼 다시 하는 것도 글코
무슨 이야기로 빈방을 채울꼬 하며
턱 괴고 앉아 모니터만 응시하고 있다.



손주 녀석들도 작년(?)에 왔다가
이제 저그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할매는 지은 죄도 없이
년 초라고 또 어딘가에 가서
무릎 꿇고 두 손바닥에 불나도록 비비며
굽신굽신 무언가를 빌고 또 빌겠다고 나갔다.
가끔 성질도 나긴하지만
우야노, 지 잘되겠다는 게 아니라
영감, 새끼들 잘 되라고 그럴 텐데
밥 쫌 해묵고 설거지 쫌 하는 게 머시라꼬 투덜 되겠는가.
어쩌면 그 또한 업보 아닐까?
살면서 쌓는 게 후회뿐인 줄 알았더니
이래저래 빚까지 쌓는 일이라는 걸 새삼 알아간다.
내 목숨 부지하는 게 내 잘난 덕인 줄 알고
그동안 소홀했던 내 죄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래, 빚을 갚는 게야.
이렇게라도 진 빚을 탕감하면 가는 길이 조금은 편할지도 몰라.’




간만에 딸내미가 차린 아침을 먹어서 좋았는데
밥 먹는 통에 이바구 줄이 끊어져
또 한참을 자판기에 손 얹고 멀뚱히 앉았다.
녀석들이 분주하다.
뭐 이자 삔 거 없나?
세수는 했나?
빨리빨리 준비해라.
녀석들은 뛰고 할배는 아랫집에 신경 쓰이고,
분주...어수선...허겁지겁 그런 과정 끝에
겨우 차에 앉은 시각이 11시.
찐한 포옹과 또 보자는 약속을 끝으로
차창 밖으로 흔드는 작은 손들이
상가 건물 사이로 스르르 사라진다.
괜히 두 팔 벌려 심호흡해보지만
빨려 들어오는 겨울 냉기가 더욱 싸~하다.



그렇게 우르르 몰려 나간 빈방엔
딸내미 액세서리 한 쌍과 묵직한 동전봉지가 남았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연우 책가방 사려고 할매가 모은 건데
설날이 코앞이라 그때 줘도 될 일을
굳이 알렸더니 다시 가지러 왔다.
또다시 포옹하고
또 악수하고
또 손 흔들고
또 사라지고...
청소기 돌리며 살펴보니
여기저기 녀석들의 흔적이 깔렸다.
버려도 되지만 버릴 수 없는 것들.
훌쩍 커버려서 예전만큼은 못할 줄 알았는데
역시, 녀석들 떠난 빈집은 너무 넓다.
사는 게 그렇지 뭐...



어영부영 점심시간...뭐 묵을꼬?


-2019.01.02. 강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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