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작은이야기

깨어나는 시간

강 바람 2018. 9. 18. 20:50

The Sky, Blue Canvas - Acoustic Cafe
 

예초기 작업이 힘에 부쳤나봅니다.
전날, 열시도 못돼서 잠에 들었다가
꼭두새벽에 깨어 일출을 기다렸습니다.
태생이 동해바닷가여서
일출에 대한 특별한 감흥도 없이 유년을 보냈는데
객지생활이 수십 년이라
자꾸...더 자꾸 고향의 붉은 아침이 그리웠지요.
수평선 그 너머 어디에선가 여명이 시작되어
화선지에 번지는 붉은 물감처럼 퍼지다가
첫사랑의 혀끝 같은 해가 불쑥 솟을 때
바라보는 얼굴들에 번지는 발그레한 미소는
꼭 햇빛이어서 붉어진 것만은 아닐 겁니다.    

   

하루 중 가장 크게 보이는 일출 순간을
밤새 물에 불었다가 올라오기 때문이라고 
넌센스 퀴즈로 써먹던 우스개 소리가 떠오릅니다. 
뜨는 해와 지는 해는 하루 중 제일 빠릅니다.
그런 이유로 자칫하면 짧은 그 순간을 놓치기 십상이지요.

 

막 떠오른 햇빛에 만물이 발그레 물들 때
흔하디흔한 호박꽃도 더 고와 보입니다.
반쯤 핀 이 꽃에 반딧불이 잡아넣고 놀았는데...


마당 앞의 하우스엔 잡초만 무성하고
그 한편에 일부러 심었는지 그냥 생긴 건지
자잘한 꽃이 무더기무더기 피웠습니다.
"이게 부추 꽃이가?"
꽃 생김새가 긴가민가해서
누구에게 라 할 것 없이 중얼거립니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으니 알 턱이 없지요.
작년에도 있었을 테고
작년에도 보았을 것들이 새삼 눈에 드니
내 누님의 상태에 따라 이렇듯 달라지네요.

 

쑥부쟁이? 솔직히 잘 모르겠고
뭐 맞든 아니든 곱지 않습니까?
마치 해 맞으려 얼굴을 든 것 같습니다.
빛이라는 게...
아니 볕이라는 게...
아니 볕든다는 게
마치 만물을 깨우는 알람 같습니다.
그 소리에 깨고 그 소리에 일어나
해야 할 일을 하고 해 지면 하루를 마치는
세상 모든 삶에 영향을 미치는, 혹은 간섭되는 해.

 

제 눈에는 더없이 좋은 풍경입니다.

 

잘났다고 더 주지도 않고

못났다고 덜 주지도 않으니까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대부분이지만 

알고 모르고의 문제가 아니라

바라보는 시선의 문제라며

사물에 대한 무심함을 애써 얼버무립니다.  

  

마당가에 늘어선 생들을 살피며

  

아는 녀석을 만나면 반가워서 보

 

모르는 녀석은 궁금해서 살피며

그렇게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밤새워

흩어진 알갱이 모았다가

목마른 생들의 생명수가 되는 이슬 한 방울까지 거들어


밤낮없이 키운 새끼들을

어느 바람 좋은 날 훌훌 털어 보내고

종당엔 빈 대궁이 저 홀로 말라가는 세상의 이치도 

저기 저 먼 동해의 수평선 위에 떠오른

붉디붉은 해가 이끌어 감을 알 때

그날 그 자리에 선 자신을 잠시 돌아봅니다. 

말 그대로 잠시... 아주 잠시 만요. 

 

작년 여름에 뵀을 때

수척해진 누님의 모습에 눈물 훔치며 돌아섰는데

질녀의 극진한 간호로 한층 좋아진 모습이라

웃으며 돌아설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든지요.  

훨씬 밝아진 그 얼굴에도 

햇살이

따스한 그 햇살이 오래오래 머물기를 빌었습니다...^^


-2018.09.19 강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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