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작은이야기

여름 보내며

강 바람 2018. 9. 16. 21:02

The Sky, Blue Canvas - Acoustic Cafe
 



뭐니 뭐니 해도
없는 사람 살기에는 여름만한 계절이 없다는 건
어머니의 넋두리로 일찍 깨달았고
살아보니 그 말씀이 옳다는 것도 충분히 아는데
그럼에도 어서 가라고 등 떠민 것은
느긋한 여유로움마저 앗아간 더위 때문이었다.
초록과 파랑으로만 기억되던 여름을
단번에 붉은색으로 각인시킨 그 여름이
가을비에 추레하게 젖은 채
미처 걷지 못한 비치파라솔아래 서성이고 있다.


가을을 기다렸음에도 
아침저녁으로 냉기가 기웃거리니
편의적 기억은
고통에 가깝던 그 더위조차 
언제 그랬냐는 듯 가물가물하여
눈 흘기며 투덜대던 그의 꼬리를
지그시 밟고 배웅을 미룬다.
미련이 있어서도 아니고
못 다한 사랑이 남아서도 아닌
속절없이 사라지는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란 걸 어찌 모르랴.


그렇게 여름은 가고 가을이 온다.
노랗게 익은 은행잎이
대로변에 줄지어 선 그 풍경만으로도 좋고
따갑지 않은 햇살아래 맘 놓고 나돌 수 있어 좋고
그 말고도 좋은 것이 한둘이겠는가.
덥지 않아서거나 
물것들이 달려들지 않아서라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반가운 게 가을이다. 


이 가을에
바람의 심사는 또 얼마나 나댈지 나도 모르겠다.
간만에 베란다에 나앉아 주섬주섬 새를 얹었다.
시간의 흐름을 아쉬워하면서도
그렇게 또 가을을 기다리고 있다.


-2018.09.16 강바람-








'바람소리 > 작은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침산책  (0) 2018.10.05
깨어나는 시간  (0) 2018.09.18
후유증  (0) 2018.09.05
  (0) 2018.07.27
망초와 개망초  (0) 2018.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