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배 집에 오면
뭔가를 만드는 게 당연한 일이 됐습니다.
쌍둥이 중 큰 녀석은
미리 그려 둔 설계도를 보이며 활을 만들어 달랍니다.
가느다란 오죽(烏竹) 가지를 휘어서 줄을 먹이고
화살 끝에 지우개를 박아서 안전조치한 뒤에
함부로 겨누지 말라는 주의와 함께 건넸더니
신이 난 큰 녀석과는 달리
작은 녀석의 표정이 영 거시기합니다.
넌 뭐 만들고 싶은 게 없냐고 물었더니
몸 만 비비 꼬며 뒤늦은 생각에 빠집니다.
준비성 좋은 큰 녀석과
즉흥적인 작은 녀석 간의 타고난 차이는
열두 살 먹도록 좁혀지지 않으니
이게 소위 말하는 천성인가 싶군요.
작은 녀석의 설계도는 쉬 나올 것 같지 않고
그렇다고 빈손으로 보내 놓으면
형제간의 냉전이 불 보듯 뻔한 일이라서
바퀴 두 개와 대나무 자투리를 엮어서
장난감을 겸한 연필꽂이를 만들어 줬습니다.
할배가 녀석에게 만들어 줬다는 표시도 했습니다.
무기와 바퀴는 머스마들이 선호하는 것들이라
활과 연필꽂이 둘 다 만족한 듯싶은데...글쎄...
작은 녀석은 활에 대한 미련이 없어 보이는 반면
열필꽂이로 향하는 큰 녀석의 눈길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하~이거 참...
뻔히 보이는데 모른 체 하기도 그렇고 해서
갈 길 멀다는 사위의 재촉을 귓등으로 들으며
일단은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쯤 조몰락거리다가
재료부족을 핑계로 다음을 기약했으니
당장은 아쉽더라도
큰 녀석의 서운함이 조금은 줄지 않았겠습니까?
잘 만들어서 보내주기로 하고
쿨하게 바이바이를 했습니다.
머잖은 날
할배의 존재가치는 점점 작아질 것이고
이 녀석들의 관심권 밖에서
오히려 녀석들의 눈치를 살피는 날인들 없겠습니까.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아직은 백지인 작은 녀석과
서툴지만 뭔가 형태를 그려 낸 큰 녀석.
지금 이 둘의 차이를 말하기엔 너무 성급하겠지요?
녀석들의 진짜 설계도는 아직 점하나 찍지 않았을 텐데요.
눈부신 계절...5월입니다....^^
-2019.05.05. 강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