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작은이야기

괭이밥의 더부살이

강 바람 2006. 9. 29. 18:23

 

 

화분에 물 주다보니

동백나무에 괭이밥이 자리잡고 있다.

가지가 부러져 나간 자리가 오랜 시간 아물면서 생긴

화산의 분화구 같은 곳인데

화분 표면에서도 한뼘이나 높은 곳을

괭이밥 씨앗이 어떻게 자리 잡았는지 모르겠다.

뿌리나 제대로 있는지 궁금해서 들여다 봤더니

웅덩이의 이끼에 의지해 딱 한포기가 있는데
아무래도 억지로 붙어있지 싶다.

 

 

 

 

나무의 입장에서 보면 여간 골치 아픈 일이 아니겠지.
그 웅덩이 쪽 피부가 건강해야 조금씩 상처를 아물려 갈 건데
그렇잖아도 고인 물 때문에 늘 축축하게 젖어 엉망인차에
주인이라는 사람마저
그 괭이밥 살릴 거라고 매일 물줄 테고
그리되면 아물기는 커녕 오히려 썩어갈 것은 자명하니
더부살이 하는 괭이밥이 당연히 싫을 것이다.

 

 

 

하지만 괭이밥의 입장에선
어쩌다 씨앗이 그곳까지 갔고
어렵게 뿌리내려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데
이제 와 밀어낸다면 어쩌란 말인가?
제 하나 붙어산다고 나무가 당장 어찌되는 게 아니라면 
사는 날까진 좀 봐 줬으면 싶을 테고...

 

내 입장에선
괭이밥이 한 철 살고 떠난다면 기다려 줄 수도 있으련만
작고 노란 꽃을 피운 걸 봐선 곧 씨앗을 퍼뜨릴 게 분명하고
씨앗이 아니더라도 뿌리번식 하는 녀석이라
머잖아 그 분화구를 가득 채울 테니
그냥 두기도 어려운 참으로 난감한 일이긴 한데
우야노,
잘디 잔 잎과 노란 꽃이 앙증맞게 이쁜 걸...

 

 

 

동백나무야~!
세상 혼자 사는 게 아닌가 보더라

죽은 나무에도 생명이 깃드는데

살아 가면서 작은 것 하나 거두지 못한대서야...

괭이밥이 너무 불쌍한데
어렵겠지만 사는 날까지 같이 좀 살면 안 되겠나?... ^_^

 

황금 연휴랍니다.

아름답고 풍성한 한가위 되세요...^_^

 

-06.09.29 강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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