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작은이야기

압력밥솥

강 바람 2006. 10. 23. 18:17

흐르는 강물을... 그림 한 장 소개합니다. 무엇을 느끼십니까? 저는 힘을 느꼈더랬지요. 응집된 에너지가 폭발하는 듯하고 용암이 분출하는 것 같기도 하며 속에 든 응어리를 사정없이 발산시키는 것 같은, 암튼 뭔가 속이 확 뚫리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그 덕분이었는지 우엤는지 그날 월드컵 토고전에서 시원하게 역전승을 거두고 그 짜릿한 기분과 노숙으로 인한 피로감이 겹쳐 달콤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지요. 여기까지는 이 그림에 대한 저 나름의 느낌인데 실상은...... 이랬습니다. 나이 값 몬 하고 알라처럼 까불다가 고마 폰 액정이 나갔습니다. 답답합디다. 차라리 통화조차 안 되도록 망가졌더라면 포기할 텐데 안 보인다 뿐이지 통화도 되고 또 광고겠지만 메시지 들어오는 소리도 들리는데 현실적으로는 확인할 수 없다는 게 참 답답했지요. 그 많은 전화번호 중에 기억할 수 있는 거라곤 달랑 세 개. 단축번호는 다섯 개 이게 뭡니까? 그 안에는 엄연히 다 있는데 쓸 수 없다는 것. 보이지 않으니 아무 소용없다는 겁니다. 참 답답합디다. 오늘 저녁에 제가 밥을 했지요. 왜 밥을 하게 됐느냐구요? 집에 아무도 없고 배고프고 사먹기 싫고.... 암튼 제가 밥했습니다. 오래전이긴 하지만 등산이나 야유회에서는 자주 해먹은 밥이라 별로 낯선 작업은 아니었는데 문제는 압력밥솥이었습니다. 그냥 냄비에 했으면 별 탈 없이 잘 마무리 됐을 긴데 손 가까이에 있고 평소 아내가 자주 쓰던 거여서 그냥 썼는데 이거역시 속을 볼 수 없었다는 것이 실패의 원인이었습니다. 손등에 찰랑찰랑하게 물을 넣고 가스렌지에 올리고 다른 일 하다 보니 쉭~섹~쉭~섹... 증기기관차 김새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니 그때부터 안절부절 입니다. 불을 낮춰야하나? 시간으로 봐선 아직 퍼지지도 않았을 시간인데 그넘의 쉭섹쉭섹이 사람 불안케 하더라고요. 일단 낮췄습니다. 김새는 소리는 점점 더 세고 안전핀사이로 밥물은 넘쳐 나오고 열어서 확인할 수도 없으니 또 답답했습니다. 아고~ 이럴 줄 알았으면 냄비에 하는긴데... 워낙 기세가 등등하고 타는 냄새까지 나기에 불을 껐습니다. 한참을 기다려 스팀을 빼고 열어보니 위에는 물이 흥건하고 밑에선 타는 냄새가 나고... 다시 불을 붙였다 껐다가 혼자 생쇼를 한 끝에 열어보니 물은 아직도 축축하고 찔러보니 밑은 눌었고... 말 그대로 죽도 밥도 아닌 딱 중간이더군요. 먹는 둥 마는 둥 저녁을 해결했네요. 지금 솥에는 불은 누룽지가 한 솥입니다. 있다가 야참으로 한 사발 할까 말까 생각중입니다. 그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볼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만, 기억력 좋은 사람은 액정 없이도 전화 잘 하고 아내는 쉭섹 소리만 들고도 밥 잘 짓는 걸 보면 볼 수 없는 게 문제이기도 하지만 볼 줄 모르는 내게도 문제는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대상이 기계건 사람이건... -06.06.15 강바람-

'바람소리 > 작은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채송화  (0) 2006.10.23
비가 내리네  (0) 2006.10.23
술 고픈 밤  (0) 2006.10.23
  (0) 2006.10.23
메밀꽃  (0) 2006.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