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작은이야기

비가 내리네

강 바람 2006. 10. 23. 18:19


비가 내린다.
멍하니 바라본 장산은
운무에 싸여 한발 더 멀리 물러나있고
아이들 웃음소리 끊긴 길 건너 초등학교는 
오늘따라 유난히 낮게 엎드렸는데
공사장 크레인만 
내려앉은 하늘을 떠받치기라도 하려는 듯 
그렇게 무심히 빗속에 서있다.
베란다 난간에 매달린 
조롱조롱한 빗방울은 구슬처럼 반짝이고 
그 작은 우주엔 
하늘도 들어있고
산도 들어있고
크레인도 들어있고
학교도 들어있다.

그런 멍한 상념 속에서 문득
오늘이 6.25임을 떠올린다.
참 오랜만에 아버지를 떠올렸고
굴다리 공습대피소를 떠올리고
마당 한 구석 방공호 속의 퀴퀴한 냄새와
공포...
배고픔...
참 오랜만에 더듬는 이 기억들.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서서히 잊혀져가던 
깨진 유리조각처럼 날카롭던 그 기억들, 
게으른 이 아침 
달력 속에서 튀어 나온 그 조각들은
세월에 무디어져 
살에 닿는 아픔이 예전만 못하니
비의 풍경이,
조용한 이 풍경들이 
아픔조차 무디게 하는 건지...
아니면, 간밤의 길몽 덕인지...
살면서 아프지 않을 수 없겠지만
딱, 고만큼만 아팠으면 싶다.
세월이 편하게 보듬을 수 있을 만큼의 아픔만...
누군가가 누구를 기다리고 선 아침
그렇게 비는 내리고 있다.
-06 육이오 아침에 강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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