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작은이야기
비가 내린다. 멍하니 바라본 장산은 운무에 싸여 한발 더 멀리 물러나있고 아이들 웃음소리 끊긴 길 건너 초등학교는 오늘따라 유난히 낮게 엎드렸는데 공사장 크레인만 내려앉은 하늘을 떠받치기라도 하려는 듯 그렇게 무심히 빗속에 서있다. 베란다 난간에 매달린 조롱조롱한 빗방울은 구슬처럼 반짝이고 그 작은 우주엔 하늘도 들어있고 산도 들어있고 크레인도 들어있고 학교도 들어있다. 그런 멍한 상념 속에서 문득 오늘이 6.25임을 떠올린다. 참 오랜만에 아버지를 떠올렸고 굴다리 공습대피소를 떠올리고 마당 한 구석 방공호 속의 퀴퀴한 냄새와 공포... 배고픔... 참 오랜만에 더듬는 이 기억들.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서서히 잊혀져가던 깨진 유리조각처럼 날카롭던 그 기억들, 게으른 이 아침 달력 속에서 튀어 나온 그 조각들은 세월에 무디어져 살에 닿는 아픔이 예전만 못하니 비의 풍경이, 조용한 이 풍경들이 아픔조차 무디게 하는 건지... 아니면, 간밤의 길몽 덕인지... 살면서 아프지 않을 수 없겠지만 딱, 고만큼만 아팠으면 싶다. 세월이 편하게 보듬을 수 있을 만큼의 아픔만... 누군가가 누구를 기다리고 선 아침 그렇게 비는 내리고 있다. -06 육이오 아침에 강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