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작은이야기

동행

강 바람 2006. 10. 23. 18:25

이른 아침 빗소리에 깨어 멍한 시선을 창밖에 던지고 있다가 홀린 듯 수영강변으로 나간다. 길하나 건너면 바로 그곳이 강이건만 게으른 바람은 겨우 사흘에 한번 정도... 육중한 교각으로 도시의 흔적은 지울 수 없지만 눈을 돌려 강변을 훑어본다. 옮기는 걸음 따라 튀어 오르는 물방울로 바짓가랑이는 어느새 흥건히 젖어들고 쉴 새 없이 흔들리는 풀잎. 고개 숙인 채 떨고 있는 꽃. 강가에는 그렇게 바람이... 비가... 생명이...

강은 화살처럼 꽂히는 빗줄기를 말없이 받아주고 넓은 품에 온몸으로 안겼다가 작은 파문 하나 남기고 강이 되어 스러지는 비. 발길은 젖은 강변에 두고 눈길은 강심을 맴돌지만 마음은 저 혼자 산길을 돌고 벌판을 가로지른다. 그 길은 아직도 어제 같기만한 유년시절이기도 하고 바로 어제이기도 한 돌아갈 수 없는 길 들. 강바람. 카페에 들어와 생긴 또 다른 내 이름. 틀에 갇힌 채 찌들어 버린 일상 속에서 늘 갈구하던 것이 바람 같은 자유였고 강 따라 흐르는 바람처럼 걸림 없는 여행을 꿈꿨더니 여행은 늘 마음으로 떠나고 마음으로 돌아오는 저 혼자의 길이었고 손에 잡히지 않는 허전한 공상이었다. 그러던 그것이 언제 부턴가 소중한 일상이 되었고 강 따라 산천을 휘돌자던 여행이 사람 따라 흐른 마음의 여행이 되었으며 그 길에서의 느낌을 풀어놓을 곳이 있고 함께 느낄 수 있는 벗들이 있었기에 혼자이되 결코 혼자이지 않은 길이었음에 그로하여 강바람의 진정한 여행은 산도들도 아닌 바로 여기 통사공인지도 모르겠다. 지금, 물기 머금은 강바람에 찌든 속 조금 씻어내고 돌아온 이 아침의 짧은 산책도 이렇듯 혼자가 아닌 동행이었음을 느끼듯이... -06.07.01 강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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