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작은이야기

거기 누구 없소?

강 바람 2006. 11. 27. 22:03


그랬지요.
코스모스 한들거리면
그 핑계로 나그네가 되고 
억새 하얗게 춤추면 
그래서 또 바람이 되며 
낙엽 곱게 물들면 
어느새 강물이 되어 
아침이면
동해에 서서 붉은 덩어리를 안고 
저녁이면
황금 노을을 지고 가리라 했지요.

햇살 따가우면 숲에서 솔바람소리 듣고
밤이면 풀 위에 누워 별을 헤이며 
유성이 흐르면 감춰 둔 소원을 빌고 
달 밝으면 그리운 것 그리워하며 
잊혀진 얼굴 동무삼아 그렇게 
터벅터벅 혼자 가다가
지치면 돌처럼 쉬고
그리우면 바람처럼 가리라 했지요.

버리지도 못하고
간직하지도 못하고
들춰내지도 못하는
심연에 켜켜이 쌓인 앙금들. 
그 앙금 부끄러워 굳이 혼자이길 고집하였더니
그 고집이 나를 외롭게 하고
그 고집이 나를 힘들게 하였습니다.

어언
시린 인연은 그리움 되고
묻어 둔 아픔도 추억 되어 
앙다물었던 어금니 사이로 미소가 새어 나오니
골 깊은 주름에 차곡차곡 쌓인 세월이 
더러 고맙기도 합니다.

이제
혼자이기 보다 함께 가고
혼자이기 보다 함께 쉬며
어리석은 마음 휘휘 저어
산처럼 쌓인 앙금 풀어 올려
수면에 떠오른 그 찌꺼기들
세상의 밝은 빛에 곰삭혀서
훨훨 흩뿌려 버리고 싶습니다.
더불어 
허식도...
과욕도...

감히
다 버리고 
다 잊겠단 말은 못합니다.
그나마도 단지 흉내일 뿐입니다만
그래도 좋으시다면 함께 가고 싶습니다.
하나
둘
셋
넷........
떠 오르는 얼굴들을 그려봅니다. 
거기 누구 없소? 
-06.11.27 강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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