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작은이야기
그랬지요. 코스모스 한들거리면 그 핑계로 나그네가 되고 억새 하얗게 춤추면 그래서 또 바람이 되며 낙엽 곱게 물들면 어느새 강물이 되어 아침이면 동해에 서서 붉은 덩어리를 안고 저녁이면 황금 노을을 지고 가리라 했지요. 햇살 따가우면 숲에서 솔바람소리 듣고 밤이면 풀 위에 누워 별을 헤이며 유성이 흐르면 감춰 둔 소원을 빌고 달 밝으면 그리운 것 그리워하며 잊혀진 얼굴 동무삼아 그렇게 터벅터벅 혼자 가다가 지치면 돌처럼 쉬고 그리우면 바람처럼 가리라 했지요. 버리지도 못하고 간직하지도 못하고 들춰내지도 못하는 심연에 켜켜이 쌓인 앙금들. 그 앙금 부끄러워 굳이 혼자이길 고집하였더니 그 고집이 나를 외롭게 하고 그 고집이 나를 힘들게 하였습니다. 어언 시린 인연은 그리움 되고 묻어 둔 아픔도 추억 되어 앙다물었던 어금니 사이로 미소가 새어 나오니 골 깊은 주름에 차곡차곡 쌓인 세월이 더러 고맙기도 합니다. 이제 혼자이기 보다 함께 가고 혼자이기 보다 함께 쉬며 어리석은 마음 휘휘 저어 산처럼 쌓인 앙금 풀어 올려 수면에 떠오른 그 찌꺼기들 세상의 밝은 빛에 곰삭혀서 훨훨 흩뿌려 버리고 싶습니다. 더불어 허식도... 과욕도... 감히 다 버리고 다 잊겠단 말은 못합니다. 그나마도 단지 흉내일 뿐입니다만 그래도 좋으시다면 함께 가고 싶습니다. 하나 둘 셋 넷........ 떠 오르는 얼굴들을 그려봅니다. 거기 누구 없소? -06.11.27 강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