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나무이야기

휴식

강 바람 2008. 2. 14. 14:52

불에 타다만 느티나무 똥가리를

어느분이 선반으로 깍아서 그릇을 만들어 주더군요.

살면서 가장 버리기 어렵고

버렸다가도 주섬주섬 다시 챙기는 게 욕심일 듯 싶은데

이것을 그릇으로 쓴다면

채우려도 채워지지 않고 채웠다가도 금방 흘러 버릴테니

굳이 채우려 하지 않고 버리려 애쓰지 않을 듯해서 좋겠다 했는데

 

그냥 쓰기에 뭔가 2%쯤 부족한 듯 하여

며칠 전에 파락호님 전시장에 나가 이넘을 주물거렸네요.

욕심이 발동한겁니다.

 

 

제작년이던가?...

순천 선암사의 시원한 샘물이 담긴 돌확과 

대나무통으로 만든 물길이 생각나서

새와 댓가지를 준비했는데

댓가지는 생략하고 새들만 모아서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가운데에 무리의 안전을 지키는 어미새와

한모금 마시려고 목을 빼고 빠질 듯 숙인 어린 녀석과

갈증을 풀고 느긋하게 하늘을 보는 녀석과

조금 컸다고 데이트에 여념없는 청춘 한 쌍과

그 모습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는 또 한마리의 어린 새까지

모두 일곱마리의 새로 구성했습니다.

 

 

그것이 사람이든 새든

물가에 생명이 깃드는 건 당연한 이치니

새를 앉혔지만 사람의 표정일 수도 있겠지요.

더러는 빨래터의 아낙일 수도 있고

우물가의 수다일 수도 있겠지요.

좀더 비약하면 치열한 삶의 현장일수도 있고

편한 휴식의 또 다른 표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랬었지요.

우리 통사공이 님들의 쉼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우물이 되고 빨래터가 되어

호호깔깔 웃음이 그치지 않는 즐거운 곳이 되었으며 좋겠다고...

그리 될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다고...

모두가 함께 이루어 가는 곳이니 많이 도와 달라고요.

  

 

통사공과 함께한 4년은

양 어께에 삶에 대한 무한책임을 짊어졌던

이십대 이후 사십년 중 가장 아름답고 편안한 나날들이었습니다.

무엇이 득인지 손핸지 재보지 않아도 됐고

이래야 할까 저래야 할까 궁리하고 계획할 필요 없이

그냥 마음 시키는대로 행하면 되었으니

그만큼 편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게 그냥 그렇게 되었겠습니까?

  

세상살이 제 의지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고

재고, 따지고, 계획하고, 검토한 일도 허망게 끝나고 

옳은 것을 옳다고 말하지 못하는 비겁함도 있었고

그른 것도 필요에 따라 옳다고 우기기도 했지만

돌아서면

눈 흘기며 바라보는 내 속의 또 다른 내가 있어

편치 않은 마음으로 빈 하늘 바라보지만

아침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그 현장에

딱딱한 몸짓과 꼬인 눈으로 서있는 나를 보며

벗어나야지, 벗어나야지를 뇌까리면서도

그렁저렁 무기력하게 보낸 세월이 삼십년.

 

그 지루함에서 풀려나

휴식의 여유 속에서 만난 나무와 사람들.

무엇을 얻자고 한 것도 없고
무엇을 내세우려 한 것도 없고
그렇다고 무엇을 내 놓으려 한 것도 없이

나무와 그를 닮은 사람들의 편하고 순함에 빠지고 

그들이 가진 색과 향과 결을

보고 맡고 쓰다듬으며 얻은 평온으로  

뾰죽빼죽 칼날 같던 마음을 다듬다보니

사십년 잠자던 내안의 또 다른 내가 깨어나
있는 듯 없는 듯 그냥 그렇게 그렇게 어우러져

작지만 소중한 것들을 나누고 

그것이 인연이라고, 사랑이라고 말하며

작은 괴임돌 하나 되어 재미나게 지내왔는데

어느날 돌아보니

나도 모르게 뾰족한 가시가 다시 돋아나고 있었으니

옳으니 그르니를 따지고

이러지 말라, 저러지 말라 간섭하는 잔소리꾼이 돼 있더군요.

 

 

어쩌면,

집착이고 아집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같은 입으로 다른 말을 해야하는 이 모순이 싫었고

그간에 지은 口業이 두렵기도 했습니다만,

어쩝니까, 이곳을 떠날 수 없는 것을요.

 

통사공이라는 우물가에 모여

더러는 작은 것에 만족하기도 하고

더러는 갈증 해소에 미흡하여 아쉬운 표정도 보이고

더러는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갸웃거리기도 하지만

님들과 어깨동무하여

함께 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함께 풀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함께 웃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어젯밤은 

차시집 작은 단칸방 수리하는 님들의 따뜻한 마음과

그 일에 동참치 못했지만 함께 즐거워해주시는 님들의 표정을 보면서

몸도 마음도 따뜻하게 잘 잤습니다.

작지만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는 곳.  

모자라면 모자라는대로 마음으로 교감할 수 있는 이 곳이

편안한 휴식처로 오래오래 이어 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달콤하고 시원한 사랑으로 목축이게 해주시는 님들께 고백합니다.

"사랑합니다"

 

게으름으로 많이 소홀했음을 반성하며

님들의 끊임없는 관심과 격려를 소원합니다.

 

-08.02.14 바람부는 천막에서...강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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