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작은이야기

노을 잡으려다가...

강 바람 2008. 8. 6. 00:18

"다 저녁에 오데 가는교?"

"경제활동하러..."

"예?? 뭐라고요?"

"이천 오백원짜리 경제활동하러 간다고..."

"???"

"아무리 불경기라지만 내가 담배 한 갑이라도 사줘야 갱재가 돌아 갈 거 아이가...ㅎㅎ"

싱거운 대화를 뒤로 하고 사진 찍으러 나갔습니다.

저녁 하늘에 노을 기미가 예사롭지 않았거던요.

 

하지만,

하늘을 봐야 별을 딴다고 뭐 보이는 게 있어야 말이지요.

아파트 숲 사이의

한 뼘도 안되는 자투리 하늘이 오히려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삼년 전만하더라도 이렇게 꽉 막히지는 않았는데...

옥상으로 올라갈까 하다가

바로 앞 건물만 피하면 넓은 하늘이 보일듯한 마음에 강변으로 향했습니다.

 

역시 착각이었습니다.

강 건너에 아파트 숲이 있다는 걸 모르지 않았음에도

그런 생각이 들었으니 제가 생각해도 참 미련합니다.

결국 노을은 먼 빛으로만 느끼고

강변에 늘려 있는 작은 꽃들을 들여다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한 걸음 옮길때마다 메뚜기들이 떼지어 날고

철 이른 가을 꽃들이 강변을 수놓고 있더군요. 

이 꽃들도 철없기는 마찬가지지만

초목이 푸르르고 태양이 이글거리는 이즈음의 철 없음은

야산 양지녘에 핀 겨울 진달래나 철쭉처럼 애처롭지 않아 다행이었습니다.

  

오히려 제철에 피어난 이 녀석들이,

망초라는 이름으로 농부의 원성과 한숨을 자아내게 한다는

이 녀석들에게 더 눈이 가더군요.

 

그렇다고 원색의 꽃들이 이쁘지 않다는 게 아니라

그냥 수더분한 이 개망초에 자꾸 눈이 가더라는... 

어쩌면 결코 고운 모습이 아니었기에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강아지 풀도 그렇고...

 

녀석들 모두 하늘을 보고 있습니다.

사방을 둘러봐도 빈 곳이라곤 찾을 수 없으니

그래서 하늘을 보고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반쯤 누워 빈 하늘에 녀석들을 담아 봤네요. 

 

그렇게 하릴없이 한바퀴 돌고 들어가려는데

가로등에 매달린 스피커에서

귀에 익은 해바라기의 노래가 흘러 나오더군요.

그냥 갈 수 있습니까? 벤치에 앉았지요.

입속으로 흥얼거리며 아쉬움에 또 하늘을 봅니다.

 

오가는 사람은 많은데

어째서 나는 혼자인 듯 했는지...

 

산책로 가로등에 황색 불빛이 하나 둘 들어오고

강에는 거꾸로 선 모습들이 찰랑찰랑...  

건물도 흔들리고

불빛도 흔들리고

내 모습도 흔들리고...

어쩌면 흔들리는 저 모습이 나의 본모습은 아닐지...

 

 

노을 한 컷 얻지 못했음이 아쉽긴 했지만

살아오면서 쌓인 아쉬움과 후회가 이미 산더미 같으니

그 무더기 위에

작은 아쉬움 한 줌 더 올렸다고 클날일도 아니고

대신,

색깔 좋은 꽃들과

부지런한 사람들과

시원한 바람과

좋은 음악을 들었으니

굳이 손익을 따진다면 남는 장사겠지요?

사는 것 자체가 아쉬움과 후회를 쌓는 일일진데...

 

모처럼 아들내미 외박하는 덕분?에 이 시각까지 앉아 있었지만

글도 모처럼 써보려니 어째 영 어색합니다.

밤이 깊었습니다.

모두들 시원하고 편안한 밤 되시길...^_^

 

-08.08.06 아직도 더운 야밤에... 강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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