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작은이야기

빈티지 습관

강 바람 2009. 3. 4. 21:22

   

크지도 않고, 구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고

값나가는 것은 더더욱 아닌, 자잘한 것들...

굳이 구분하자면 쓰레기에 가까운 그런 것들이

언제 쓰일지도 모른 채 여기저기 널렸는데...

 

 

꼬맹이들 돌 잔치 끝내고 돌아간 뒤에

녀석들 피해서 베란다에 내 놨던 거실 집기들을 옮기려는데

구석구석에 뭔 넘의 자잘한 것들이 그리도 많은지

무거워서 쓰지도 못할 오래된 라켓...

오동나무로 만든 포장용 상자...

고장난 우산 뼈대...

흰 포대에 불룩하게 들어 있는 전선

386시대의 하드드라이브

볼트, 넛트, 철사, 대나무 똥가리

보일러 파이프 연결할 때 쓰는 L보,

그것 조립할 때 쓰는 실, 고무박킹

또 또 또......

일일이 손꼽기도 어려운 정신 사나운 그것들...

최근엔 나무똥가리까지 보태지니

눈에 보이지 않는 구석 바닥엔 또 어떤 것들이 잠자고 있을지...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기억도 못하면서

그래도 뭔가 쓸만한 게 있으면 버릇처럼 챙기는 이유는

 

연, 썰매, 팽이, 바람개비, 딱지, 새총, 총, 칼은 물론이고

고기잡는 작살, 전복 잡이 칼 등등...

그 온갖 장난감과 도구를 손수 만들어 써야 했기에

종이, 나무, 철사 가릴 것없이 모아 두던 어릴적 버릇인 듯하네요.

예전에 

기안 초고지로 쓰던 이면지가 아직도 헌 가방에 남아 있고

뒷면이 백지인 광고지는

낙서라도 한줄 써야 맘 편히 버릴 수 있으니

그게

가난이니, 절약이니 그런 의미보다는

단지, 아깝다는...귀하다는...

뭔가에라도 쓰일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물자 귀한 시절에 얻어진 오래된 습관인가본데 

반 세기를 넘어 물자 풍족한 지금도 버리지 못하는

요즘 말로 하면 빈티지 습관가 봅니다.  

 

 

이것도 그렇게 꿍쳐둔 거랍니다.

여물통 받침 만들면서 생긴 다름나무 자투린데

아시겠지만

무늬와 색감이 그냥 버리기엔 아까울 정도지요.

그래서

난로에 집어 넣으려는 걸 슬그머니 밀쳐 뒀다가

 

 

이렇게 화분을 만들었습니다.

나막신 같기도 한 이 녀석을 속 파낸다고 고생고생 했는데

목질이 단단한 녀석이다보니 결국엔 엔진톱으로 해결하고

겉은 벨트 센드로 갈아서 모양을 냈네요.

엄밀히 말하면, 꽃이나 풀을 위함이라기보다

자투리가 아까워 만든 거지요.

그렇게 만든 것에 이름 모르는 풀을 심었습니다.

제작년 가을에 노랑제비꽃이라고 얻어 심은 건데

잎만 봤을 뿐 꽃은 구경도 못했고

그 잎마저도 찬서리에 녹아 대궁이만 장대처럼 서있었지요.

뿌리가 무성하기에 그것만 믿고 심긴 했지만

솔직히 금년 봄에 이 녀석 깨어날지는 장담 못하겠군요.

여기까지만해도 충분히 즐겼으니

운 좋게 새싹이라도 나 준다면 까짓 춤인들 못추랴 싶네요. 

 

 

 

봄이 오면

'봄맞이 대청소'라도 해서

가슴에 꿍쳐둔 잡동사니와 함께

필요 없는 것들을 몽땅 들어낼 참이지만

글쎄요...

얼마나 버릴 수 있을지 저도 궁금합니다.

 

봄.봄 하지만 아직은 밤바람이 찹니다.

다른 건 다 버려도 건강만은 꼭 챙겨 두이소...^_^

 

-09.03.04 강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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