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방문·만남

봄나들이

강 바람 2010. 4. 18. 21:56

무다~이 길을 나섰습니다.

고사리 손들과 나무 껍질 벗기면 재밌을 것 같아서

무턱대고 영지초등학교로 갔지요.

만개한 벚꽃이 눈처럼 흩날리는 길을 헤치며 가보니

학교엔 아무도 없고

빈 교정에 껍질 벗은 나무만 서로 기대어 섰습니다.

녀석들 쫄랑거리는 모습 좀 보고싶었는데

고마 제가 한 발 늦었지 뭡니까.

그렇다고 그냥 물러설 수 있겠습니까?

카메라 뽑았으면 풀이라도 한 장 찍고 와야지요.

 

 

비껴선 나무에 햇살이 반짝입니다. 

천막만 두르면 인디언 집 되겠네요.

조금은 아쉬운 마음으로 발길을 돌려 북토리로 향했지요.

 

 

여기가 어딘지 아시겠지요?

저 뒤의 빨간 지붕 어디선 본 듯 하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북토리의 멋대가리 없는 머스마네 집이지요.

논둑에 제비꽃이 흐드러졌기에 한 컷 했습니다.

엎드려 바람 자기를 기다리느라 숨도 제대로 못 쉬며 찍었고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나무 껍질이이나 얼라들 모습은 핑계고

모처럼 화창하게 갠 봄날에 저 홀로 겨워

엉덩이 덜썩이다가 구실을 얻어 나섰는데

운 좋게도 여러 님들까지 만났으니 

무다~이 나섰다가 횡재한 셈이지요. 

안토니오님, 막걸리와 족발 잘 먹었습니다.

수니님, 호박떡 참 맛있었고요.

그리고, 우연히 들르신 자두님도 반가웠습니다.

 

막걸리 한 잔 마신 걸 핑계로

뜨뜻한 아랫목에서 굳은 몸 나긋나긋하게 지지며 하룻밤을 보내는데

밤새도록 소 울음 때문에 뜬 눈으로 지샜습니다.

음매~~, 음매~~.....

참 끈질기게도 울어 대더군요.

아침에 일어나 소가 왜 그렇게 우냐고 물었더니

소 젖 떼려고 따로 두면 그렇게 섦게 운답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투덜거린 게 얼마나 미안하던지요.

말 못하는 미물도 저러한데...

 

급한 일이 생겨 일찍 나서려다가

아침 먹고 가라시는 모친의 권유를 뿌리치지 못하고 

엊 저녁에 이어 두끼 씩이나 따신 밥으로 배불렸습니다.

반찬이 없노라시는 말씀과 달리

어떤 진수성찬보다 달게 먹은 뒤  

들국화님께서 주신 정구지(부추) 한 아름과

무무님이 주신 대추나무 한 덩이 안고 돌아왔습니다.

참 고맙고 따뜻한 하루였습니다.

바람을 꼬드기는 것이

화창한 봄날이기보다는 그 따뜻함인지도 모르겠습니다...^_^

 

-10.04.18 강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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