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작은이야기

바다 가는 길

강 바람 2014. 9. 10. 20:43

Water is wide

 

-바다 가는 길

 

가파른 언덕위로

갯바람에 떠밀려

사람들이 길을 내었다.

 

발길이 머문 자리에서

바람이 멎으면 지붕을 이었고

별빛이 또렷한 날엔

한 평도 안 되는 텃밭에 씨를 뿌렸다.

그 사이를 비집고 등대가 들어왔다.

 

사람들은 등대에 오르지만

묵호의 사람들만이

등대에 오르는 길을 알고 있다.

 

묵호의 사람들만이

등대로 향하는

길고 좁다란 고샅들의 사연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묵호등대에서 바다로 내려가는

길목에 시비처럼 서 있는 글인데

누가 쓴 글인지는 안내가 없어 모르겠지만

내게는 참으로 와 닿는 글이라서

글과 바다와

산허리에 매달린 집과

거기에 이어진 좁은 비탈길을

번갈아 보았습니다.

 

등대에 대한 정확한 기억이 없어 찾아보니

60년 대 초에 세웠다내요.

그렇다면 내 소년시절에 세운 건데

내 기억으로는 처음 가본 것 같습니다.

명색이 고향인데 설마 처음이겠냐 싶기도 하지만

이 등대는  특별한 시설물이기보다는

늘 그 자리에 산의 일부처럼 서 있었기에

그 근방을 오르내리면서도

눈여겨 보지 않았었나 봅니다.

육지에서는 부러 쳐다볼 일 없는 것이라

관심이 덜 했던 모양입니다.

 

그렇듯 무심했어도

영동선 열차에 올라

도계, 황지, 철암 같은

태백산 줄기 오지마을을 휘돌다

북평항을 지나면서 만나는

묵호등대의 불빛에

휴~ 막혔던 숨통이 트이는 그런 것이었고

바다에 나가면 어김없이 눈길이 가는 것이었지요.

바다에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 등대였습니다. 

 

가파른 등대길

그 언저리에 사는 묵호사람들은

등대 앞에 서서 푸른 바다를 내려다보며

콩알만 한 고만고만한 배 중에서

지아비의 배를 용케 알아채고

가파른 언덕을 미끄러져

헐레벌떡 어판장으로 마중 갔다가

어획물과 어구를 이고

가파른 그 길을 또 헐떡이며 올랐지요.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저 아래 평지에 있는 우물까지

달도 지고 없는 첫새벽에 물 길러 다녔답니다.

 

비단 이곳만 가파른 건 아닙니다.

백두대간이 남으로 내달리다가

작은 줄기 하나가 급하게 바다와 만나고

그 곳에 터를 잡다보니

산과 산 사이에 집을 짓고 살았는데

항구에 접한 묵호는 대다수 그렇게 살았고

울집 할매도 그렇게 처녀시절을 보냈는데

내게 시집와 젤 좋은 것이

가까이에 공동수도가 있는 거였답니다.

 

 일제강점기 말엽

삼척지역의 무연탄을 나르기 위해

1941년에 개항되어 수탈의 전초기지가 된 묵호는

콘베어 벨트를 타고 배에 실리는 연탄이

바닷바람에 날려

마을이고 항구고 온통 검게 물 들였으니

조선 순조 때 지어진 묵호(墨湖)라는 지명은

바다도 검고 물새도 검어서 지어졌다는데

설마, 한 세기 후의 일을 내다본 것은 아닐 텐데

어찌 그리 딱 맞게 지었을까 싶었지요.

 

내가 떠나던 76년까지

자그마치 5만의 인구가 북적대던

항구 특유의 활기찬 곳이었지만

연탄 수요도 줄고 어획량도 준 데다가

묵호와 북평을 합쳐 동해시가 되면서

3천명에 달하던 80년 된 묵호국민학교는

이리저리 갈라지고 떠나서

지금은 고작 200명도 안 되고

항구의 중심이던 묵호는

그 위상이 격하되어 동해시 묵호동이 되어

삶터 보다 관광지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여전히 푸른바다는 그 곁에 넘실대고

아기자기하고 예쁜 골목풍경이 아닌

그 바다와 이어진 진득한 삶의 풍경을

허름한 담장에 가감없이 살려

어제와 오늘을 이어주고 있음을 위안 삼았습니다.

그렇게 애 써준 고향 사람들이 고마웠네요.

 

아득히 뻗은 방파제를 보며

숨 한번 길게 들여마시고

내년을 기약하며 돌아섰습니다.

 

-14.09.10 강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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