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방문·만남

산골에서...

강 바람 2006. 10. 23. 18:44
 

경북 김천 어느 골짜기에
젊은 부부가 똘망똘망한 삼남매를 거느리고 
바람처럼 살고 있었습니다.
단칸방에 다섯 식구 북적대기 어려워
허물어진 사랑채를 수리하는데 
어찌어찌 인연되어 거들어 주기로 했다기에
함께 따라 갔습니다. 
친환경 농업을 꿈꾸며 깊디깊은 골짜기를 찾아 들었지만
그 꿈은 理財 밝은 꾼에게 앗기고
한발 물러 허름한 폐 농가 한 채 빌려 
임시 거처로 주저앉았다는데
십여 호의 마을은 절반이 빈 집이고
그나마도 허리 굽은 노인들뿐이랍니다.
유기농에 약초 채취를 업으로 한다지만
아무래도 몇 년간은 고생 좀 해야겠다 싶은데
젊은 부부의 얼굴에서 어두운 그림자는 보이지 않으니
내 생각이 너무 세속적인 것인지...

이른 아침에 창원을 떠나 목적지에 도착하니 열시 반
앉자마자 내놓은 막걸리.
산골에선 보기 드문 성찬이라 웬일인가 했더니
먹을 복은 타고 났든지 마침 어제가 제사 날이었답니다.
젊은 부인이 직접 담은 막걸리도 있었지만
그냥 맛만 봤습니다.

낡은 양철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은 
풍상에 삭아 슬며시 기울기 시작하는데
한쪽 벽만 겨우 붙어 있고
방과 헛간의 격벽도 허물어져 막막하기만 한데

설왕설래 갑론을박 끝에 통나무를 자르고 다듬어 

하방과 중방(맞나?)을 새로 끼워 넣고
점심을 얻어먹었습니다.

마을을 둘러보니 
작년까지만 해도 유용하게 쓰였을 담배 건조장이
언덕 위에서 오후 햇살에 하릴없이 졸고 있고

축대엔 금낭화를 비롯한 꽃들이 탐스럽게 피었는데
그 모습들이 한가한 농촌의 정경일수도 있으련만
왠지 안쓰러움으로 다가오데요.
아무 연고 없는 나그네였더라도 그런 기분이었을까?

격벽도 보강하고

전면도 튼실하게 보강하고

각목을 대서 흙벽 작업이 용이토록
삼끈으로 얼기설기 엮어 마무리 했습니다.

벽 위쪽 가운데엔 헌 문짝을 눕혀 달고
양 옆엔 창호지를 이중으로 대겠답니다.
흙벽 치는 게 낫지 않을까 싶기도 했지만
창호지가 외관상으로도 잘 어울릴 것 같고
난방에도 문제없을 거라는 주인의 뜻에 따르기로 했습니다.
흙벽은 주인 혼자 틈틈이 하기로 하고

오후 네시경 산골을 출발해서
산을 넘고 
강을 건너고
羅濟通門을 지나
무주 달강에서 차 한잔 얻어 마시고 돌아왔습니다.

돌부리에 채이고 넘어지면서도
생계와 자녀 양육의 몫을 짊어지고
자신이 믿어온 이상적 삶을 꾸려가려는 젊은 주인을 보면서
꿈과 현실 사이에서 감내해야할 짐이 너무 무거움을 엿보았습니다.
가난한 젊은 가족이 
척박한 땅에 온전히 뿌리내리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땀과 인내가 필요할지...
힘내시구요.
당신의 꿈이 꼭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노숙자님, 지게작대기님 수고 하셨네요.
      -05.04.25 강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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